[최자영의 금요칼럼] 민초는 아무리 배고파도 주는 것만 받아 먹는 양아치가 아니라 주권자다

대통령이 바뀌면 판이 온통 바뀌는 한국은 대통령이 독재하는 나라 같다“민중을 위한 정부”보다 “민중에 의한 정부”가 우선한다고대 아네네 시민 민초는 민회와 재판정에서 직접 결정권을 행사했다

최자영 | 입력 : 2021/11/19 [13:33]
▲ 최자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전 한국서양문화역사학회 학회장)
▲ 최자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전 한국서양문화역사학회 학회장)

국힘당 대선후보 윤석열이 현 정부의 정책을 다 반박하고 나섰다. 원전을 재추진하겠다거나, 남북간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거나 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은 민중이 주권자가 아니라 대통령이 독재하는 나라 같다. 대통령이 바뀌면 온갖 것이 다 전도될 판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이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내년 대선 전, 코로나19 피해 및 방역지원금(1인당 20만원),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을 풀자고 제안했다가, 현재 상태로서 소상공인 손실보상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한술 더 떠서 자영업자 코로나 손실보상과 관련해 “새 정부 출범 100일 동안 5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그에 합당한 산출 근거와 재원 조달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그동안 ‘국가부채 증가’ ‘예산 퍼주기’ 등을 이유로 문재인 정부의 재정 확대에 반대해오던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뜬금없이 50조 원 규모의 재정 투입을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단다.(한겨레 사설, 2021.11.8.)

이즈음 박근혜의 대선공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속은 노인들의 실망이 컸다. 그런데 이 공약은 처음부터 실행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라고도 한다. 또 공약 자체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 지급하는 것을 전제로 마련됐고, 박근혜와 새누리당 선거캠프는 공약을 내걸 때부터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서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선거를 치른 것이란다.(뉴스타파, 2017.9.27.)

그러고 보니 민초는 위정자가 주는 거 받아먹는 양아치같다. 준다고 했다고 안 주면 말 한마디 못하고 나가 떨어지는 양아치. 여기에 문제가 있다. 명색이 주권자라고 하는 민초가 발언권도 결정권도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일부러 속임수를 쓴다거나, 꼭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일부러 속이려 한 것이 아니고 꼭 지키려 했던 약속은 못 지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상황은 계속 바뀌는 것이라서, 부득이 못 지킬 수도 있다. 대통령뿐 아니라 누구나 결심한 것, 남에게 약속했던 것을 꼭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경우 딱히 누구를 원망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원망은 약속한 이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나 자신을 배반한 나를 원망하거나 약속한 다른 이를 원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문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장담하는 사기성에 있다. 박근혜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대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수는 있겠으나, 구체적인 시행 시기나 규모는 미리 결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이다. 구체적 시행은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이고, 그 결정은 소수 위정자의 자의나 독선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인 다수 민중의 동의를 구해야 하겠다. 계획을 했으나 부득이 형편이 나빠서 시행 못하게 되면, 그런대로 민중의 양해를 구하여 변경하면 된다.

민중이 의견으로 재량하고 결정한 것은 민중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가므로, 위정자가 다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 1인이나 여야 정당이 욕을 얻어먹지 않아도 된다. 또 현 정권이 정치를 잘못했다는 빌미를 내세워 정권을 교체해야 하겠다고 소리높여 떠들고 나오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을 성토한다고 해서, 그 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되어 있고, 박근혜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물러난 것이 그 반증이 된다.

정부에 대한 원망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무책임할 정도로 과도하게 결정권이 집중되어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런 권력구조에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실수, 무능, 오판 등으로 욕을 얻어먹게 되어 있다. 반대로 잘한 것은 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이다.

차제에 왜곡된 한국 민주정치의 실상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헌법 제1조에 국민 민초를 주권자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민중의 의사가 정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민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기만 할 뿐, 그들이 뽑힌 다음 무엇을 하든 전혀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심지어 국회의원은 ’불기속 원칙‘에 입각하여,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의 의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을 공공연히 표방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하는 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민중은 위정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나오는 “민중(people)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정부”에서는 “민중을 위한 정부”보다 “민중에 의한 정부”가 우선한다. “민중에 의한 정부”란 민중이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절차를 뜻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민중에 의한 정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같은 결격사유는 민초의 입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가는가를 결정하는 데 치명적인 불이익을 초래한다. 위정자가 민초의 입에 다소간 넣어주는 것만 대수가 아니라, 민초가 자신의 몫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정치에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딱히 정권을 교체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민주정체가 있었는데, 고대 민주정치의 전형 아테네가 그러했다. 그곳에는 권력을 가진 정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민회가 있었다. 시민 민초는 스스로 결정했으므로, 위정자를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원망하기 전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도편추방(오스트라키스모스: 깨진 도기 조각에 미운 이 이름을 적어 투표하는 것)으로 멀리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민초는 결정권을 가지고 위정자를 추방했을 뿐 아니라, 위정자가 약속한 것을 수동적으로 얻어먹는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었고 오히려 먹을 것의 규모도 스스로 결정했다. 그 민주정체를 정초한 것이 솔론이었는데,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밀레니움(천년)을 두 번 하고도 또 6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옛일이다. 기원전 6세기 초 솔론은 도시국가 아테네 법제를 정초하여‘국부(國父)로 존경받았다. 그가 정초한 법의 정신은 ’선조의 법‘으로서 기원전 4세기 후반 아테네가 망할 때까지 법제의 기초가 되었다.

솔론은 빈부 간 갈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간혹 그를 독재자로 지칭한 글도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첨예하게 대립한 빈자와 부자가 내란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 서로 합의하여 전권을 그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솔론은 1년간 장관(아르콘)직에 있었을 뿐이다.

당시 자작농들은 1/6세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또 남의 집 머슴(이른바 우리가 노예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으로 팔려 갔고, 토지의 수세권이 소수의 손에 있었다. 부자와 같은 동향의 거주민(이른바 시민)이었던 빈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궐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권을 부여받은 솔론은 부채를 말소하여 부채 때문에 땅이 저당 잡혀 1/6세를 꼬박꼬박 바쳐야 했던 이들의 땅에 저당석을 제거했고, 또 몸을 팔아 남의 집 머슴(노예)이 된 이들을 해방 시켰다.

또 솔론은 거주민을 4계층으로 구분하고, 도시국가가 필요로 하는 비용을 재산의 정도에 따라 차등있게 배분함으로써 빈민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기원전 594년 일이었지만, 부채를 말소하는 바람에 솔론은 채권자 혹은 지주들로부터 욕을 많이 얻어먹었고, 그 욕은 약 250년을 지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기원전 4세기까지 전해 내려왔다.[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 국가제도, 6.2]

솔론 당시 민초가 남을 위해 예속노동 하는 것보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무 것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하면 발언권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 국가제도, 2] 그런데 솔론이 최하층 빈민에게 한편으로 국가의 부담은 면제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회와 재판정에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민회에서는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재판소에서는 배심 재판관으로 앉아 개인 간의 분쟁뿐 아니라 공직자의 비리를 심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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