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이 일본에 가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고 한다. 일제 강제노역 동원에 대한 제3자 변제안[전범기업이 아니라 강제동원과 무관한 제3자로서 우리 기업이 변상], 현재 일본 상대로 WP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것도 취소 등등. 그 취지는, 윤석열의 희망에 의하면, 과거를 싸그리 묻고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양보를 해도 앞으로 잘 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 심해져서 일제 강점기로 되돌아 가버릴 것 같다. 일본이 윤석열에 터 잡아, 요구와 사실 왜곡이 부쩍 심해진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더욱 노골화 하고, 강제동원 한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윤석열의 3자 변제안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에 대해 변제하겠다고 나선 꼴로 우스개가 되어 버렸다. 또 그전에는 아이들 교과서에 “병사가 된 조선 젊은이들”이라고 하던 것을, “‘자원하여’ 병사가 된 조선 젊은이들”이라고 하여 ‘자원하여’를 추가했다고 한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윤석열 정부 내에 해결해야 한다” 했다고 한다. 이런 일본 측 발언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일본은 한국 윤석열 정부가 정부 권력을 통해서 한국인의 민심을 억누를 수 있다고 본 것이고, 이것은 일본 식민지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을 지금도 그대로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일본뿐 아니라 윤석열 자신이 이 같은 일본의 요구에 걸맞은 강압적 지배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제3자 변제안은 자기가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 한 것이 그러하다.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생각한 것을 막 밀어붙인다. 윤석열은 대통령이란 자기 마음먹은 대로 해도 되는 직책이라고 보는 것이 틀림없다.
이 같은 독선을 이용하여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주장을 윤석열 정부 내에서 기정사실로 굳히려 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은 두 가지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고, 그것은 식민지배를 재현하는 것이다. 하나는 한국이란 나라가 민주가 아니라 독선의 군주국가인 것으로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일 관계에서 한국을 억압하고 또 일본이 원하는 것을 빼앗아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한국의 억압은 한국민 중 일부 친일파를 괴뢰(아바타)로 세우고 그 협조를 구하여 구체화된다.
이번 윤석열 ‘외교참사’의 교훈은 일본과 화해하려 하거나 양보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면 일본은 열 걸음의 욕심을 드러낸다. 오장육부를 다 열어젖히는 그 뻔뻔한 욕심으로 인해 강제동원도 없었던 것, 위안부도 자발적 매춘부로 각색 번안된다. 그 욕심을 채우는 매개(아바타)로서 그때 이완용의 역할을 지금 윤석열이 맡아서 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런 일본에게 자꾸만 ‘사과(謝過)’하라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이게 하릴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첫째, 사과는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는 점이다. 윤석열 처 김건희에게 ‘사과(謝過)’하라고 했더니, 개에게 과일 사과 내민 사진을 올렸다. 그래서 ‘개사과’란 말이 생겼다.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만일 그들이 사과한다고 해도 ‘개사과’가 될 것이 뻔하다. 이번 외교 참사를 통해 보면 그러하다.
사과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이 사과한다면 그것이 거짓 사과이기 때문이다. 이번 외교참사를 통해 보면 그러하다. 거짓 사과는 받아봤자 아무 소용 없고, 안 받는 것보다 못하다. 그런 사과를 왜 하라고 힘을 빼는지 모를 일이다.
또 사과는 안 해도 문제가 된다. 그것은 잘못한 상대가 뻔뻔하게 사과하지 않는다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받아도 소용없는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사과 담론’에 묶어 둠으로써, 정작 현실적 대응책 강구의 필요성을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를 계속 ‘사과 담론’ 속에 가두어둘 수가 있다. 사과하지 않는 괘씸한 일본에 대해 우리는 끝없이 사과를 요구하며 진을 다 빼느라 (‘다’가 아니라 일부를 뺀다해도 그것은 헛심이 된다), 정작 현실적 대책 마련에 소홀하게 된다.
사과 담론이 갖는 둘째 문제는, 남의 영역에 있는 것은 원론적으로 간섭하면 안 된다는 데 있다. 간섭은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남이 잘못하고 거짓말하고 고의로 사실을 왜곡한다 해도 우리가 나서서 그것을 다 바루어줄 수도 없고, 또 바루어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일본이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우리가 연연하는 것 자체가 일본의 거취에 예속되어 있다는 한 징후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뒷북치며 일본에게 질질 끌려다닌다. 우리가 자유로워지려면, 우선 일본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일본이 뭐를 어떻게 하든 우리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는 그에 대한 효과적 대처방법을 구해야 할 뿐이다.
누구나 거짓말도 원하면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다만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야기할 때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자면 처벌하는 쪽에서 그에 상응하여 처벌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일본이 저희들 나라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가 그딴 거 하지 말라고 간섭하려 할 것이 아니다. 또 간섭한다고 해서 그들이 순순히 물러설 리도 만무하다. 다만, 다소간 우리에게 피해가 구체화 될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길러야 한다.
국힘당 의원 이언주가 “이번 한일회담은 심각한 실책”, “일본 교과서 왜곡을 비난할 명분조차 약해져” 등의 발언을 했다. 이언주도 하릴없다. 이언주는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민심을 배반한 대통령 개인의 자의적 행위는 무효로서 처벌의 대상일 뿐인데, 이언주는 이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저버리는 짓거리를 하면, 그것은 취소되고 그 자신은 처벌받아야 한다, 그 취소와 처벌에 국회, 국민이 나서야 하고, 이언주도 그렇게 나서야 한다. 명색이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제멋대로 할 수 없다. 혼자서 제멋대로 하는 것은 독재이기 때문에, 위헌이다.
이언주의 두 번째 오류는 “일본 교과서 왜곡을 비난할 명분조차 약해진다”고 한 것이다. 일본인이 뭐를 하든, 원래 우리가 비난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것이 윤석열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명분이 강화 혹은 약화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물론 그 자유의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자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의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그냥 일본의 왜곡을 비난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비난하는 것은 효과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로 다르다. 비난하는 데 힘 빼지 말고, 그 힘으로 효과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유사시에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를 퇴치, 처벌하면 된다. 대책 없이 비난하는 것은 못난이의 소치이고, 곧 상대에게 밟히게 된다.
여기에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문제는 전체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인 중에서 독선과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일부’ 일본인이다.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사주하에 권력을 잡아 온 이른바 보수 특권층으로서의 자민당 계열이 그 같은 이들이다. 같은 예가 한국에서 식민시대에 친일로 일본에 아부했고, 광복 후에는 그 같이 외세 미국에 편승하여 특권을 누려온 일부 보수층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기득 특권층과 한국의 기득 특권측이 미국이라는 외세에 편승하여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를 말살하고 독재와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일부’ 세력이다. 한국에서는 대북 강경 대응을 명분으로, 핵 무장 운운하며 군비강화를 획책하는 윤석열이 그에 속한다. 우선적 퇴치의 대상은 ‘일본인’ 전체가 아니라, ‘일부’ 특권층 일본인에 동조하고, 기꺼이 그 ‘아바타’가 되려고 하는 국내 세력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 대 일본인, 종족 간 대립 개념은, 오히려 종족을 초월한 군국주의 지향의 특권층 대 그렇지 않은 집단 간 성향의 대립으로 전환된다.
‘사과’ 혹은 ‘비난’ 담론에 대한 반성은 한일 관계뿐 아니라, 국내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동훈(법무장광)이나 윤석열을 비난하고 사과하라고 요구만 하고 있을 개재가 아니다. ‘뻘짓’하면 바로 직무정지 들어가고 직에서 쫓아내야 한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야당(민주당)은 그냥 비난하고 촉구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검찰정상화(검수완박) 법이 합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은 검수원복(검찰 수사권을 확대하여 원위치로 복구하는 것)이 모법(검수완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바타이다. 자기 생각을 ‘국민’의 생각인 것으로 의제(실제로는 안 그런데 그런 것으로 간주)하고, 제멋대로 할 권리가 있다고 독선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적어도 현재로서 민주당은 그런 한동훈을 비난하고,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서도 그냥 사과를 요구하거나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만 하고 있다. 하릴없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취소하라고 윤석열에게 촉구했다. 그렇다고 윤석열이 그 말을 들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은 헛소리이다. 헛소리는 하나마나 한 소리이므로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렇다면, 들여오지 말라, 중지하라 등 촉구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효력정치처분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화합과 타협을 선호해서 제 손에 피묻히며 뭘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가 못할수록, 어부지리를 얻어서 다음 총선, 대선에서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기를 내심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지연되는 사이에 피래미 민초들이 당하는 피해는 당장에, 하루하루 막심하다.
▲ 최자영 편집인/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그리스 이와니나대 역사고고학박사/의학박사/전 한국서양역사문화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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